포장이 아니라 습관이 돌아온다 — 순환 포장재 루틴의 시작
택배 상자를 뜯는 일상의 모순새벽배송을 기다리던 새벽, 온라인 쇼핑으로 기분 전환을 하던 저녁, 누군가의 현관 앞에는 늘 새로운 택배 상자가 쌓여 있다. 그 속에는 필요한 물건이 있고, 그걸 둘러싼 수많은 포장재가 함께 따라온다. 비닐 완충제, 뽁뽁이, 테이프, 스티커, 그리고 커다란 종이박스. 그 물건 하나를 꺼낸 뒤 남는 건 거의 언제나 손바닥만 한 실제 제품과, 그걸 둘러싼 넘치는 쓰레기다. ‘친환경 브랜드’라는 태그를 붙이고 주문한 물건조차, 도착한 순간 다시 쓰레기가 되어 발밑에 쌓인다. 이건 과연 지속가능한 소비일까? 그 질문 앞에서 무력함을 느낄 즈음, 돌아오는 포장재라는 개념이 다가온다. 그건 배송의 끝을 다시 시작점으로 돌려보자는 제안이었다. 순환 포장재, 그 낯선 시스템에 대한 첫 경험..
샤워 후 플라스틱 없이 — 고체 보디로션바가 남긴 촉촉한 변화
샤워 후 루틴, 너무 당연했던 선택들샤워는 늘 같은 흐름이었다. 따뜻한 물줄기로 하루를 씻어내고,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털어낸 뒤, 로션을 꺼내 펌프를 누른다. 쿡 눌러 나오는 크림을 손바닥에 덜어 급히 바르고, 바쁜 하루로 다시 밀려들어간다. 욕실 선반 위엔 늘 플라스틱 용기가 줄지어 서 있다. 바디워시, 샴푸, 트리트먼트, 보디로션, 핸드크림. 그 중에서도 보디로션은 늘 크고 무겁다. 매번 다 쓰기도 전에 새 제품이 생기고, 용기 채로 버려지는 일은 당연해진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일상이 묘하게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매일 반복되지만, 정작 아무 감각도 없이 흘려보내는 루틴. 그러던 어느 날, 고체 보디로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손바닥만 한 바 하나로, 샤워 후의 시간이 다시 설계될 수 있다는 사..
햇빛으로 말리는 시간, 빨래가 아닌 마음이 정돈된다
건조기 속 시간은 너무 빨랐다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에 넣고, 바삭하게 마른 빨래를 꺼낸다. 분명 편리하다. 몇 시간 뒤면 포근한 이불과 말끔한 수건이 기다리고 있고, 흐린 날에도 상관없이 뽀송함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그 편리함 안엔 묘한 허전함이 있다. 건조기 속 시간은 빠르지만, 빨래를 둘러싼 감각은 사라진다. 빨래가 마르는 소리도, 햇살을 받으며 옷감이 말라가는 모습도, 손끝으로 눌러보며 확인하던 습기도. 그리고 어느 순간, 불쑥 떠오른다. 이 빠른 건조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지, 한 번의 작동으로 얼마나 많은 전기를 써야 하는지. 무언가가 너무 빠르면, 그 안의 ‘관심’이 줄어든다. 그래서 건조기 대신 햇빛과 바람을 택하는 일은 다시 ‘돌봄’을 되찾는 실천이 된다. 빨래를 넌다는..
피부에 닿는 감각부터 달라졌다 — 재사용 생리대가 바꾼 주기
익숙한 불편함에 길들여졌던 시간들생리는 반복된다. 대부분의 여성에게 그것은 한 달에 한 번, 몇 일간의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일상이다. 그런데 그 반복 안에서 사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생리 자체가 아니라 생리를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일회용 생리대는 늘 당연하게 사용되어왔다. 마트에 늘 진열돼 있고, 포장도 깔끔하며, 교체도 빠르고 간편하다. 하지만 너무 자주 잊고 있었던 것도 있다. 그 안쪽에 깔린 화학 성분, 장시간 사용 후의 불쾌한 냄새, 피부에 닿는 인공적인 질감. 어느 날 문득 그 ‘익숙한 불편함’이 더 이상 익숙하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붉은 자극, 가려움, 끈적이는 촉감, 그리고 무심코 버려지는 쓰레기들. 그제야 비로소 질문이 시작된다. 이건 정말, 이렇게까지 불편해야만 하는 걸까?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