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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웨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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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이 아니라 습관이 돌아온다 — 순환 포장재 루틴의 시작 택배 상자를 뜯는 일상의 모순새벽배송을 기다리던 새벽, 온라인 쇼핑으로 기분 전환을 하던 저녁, 누군가의 현관 앞에는 늘 새로운 택배 상자가 쌓여 있다. 그 속에는 필요한 물건이 있고, 그걸 둘러싼 수많은 포장재가 함께 따라온다. 비닐 완충제, 뽁뽁이, 테이프, 스티커, 그리고 커다란 종이박스. 그 물건 하나를 꺼낸 뒤 남는 건 거의 언제나 손바닥만 한 실제 제품과, 그걸 둘러싼 넘치는 쓰레기다. ‘친환경 브랜드’라는 태그를 붙이고 주문한 물건조차, 도착한 순간 다시 쓰레기가 되어 발밑에 쌓인다. 이건 과연 지속가능한 소비일까? 그 질문 앞에서 무력함을 느낄 즈음, 돌아오는 포장재라는 개념이 다가온다. 그건 배송의 끝을 다시 시작점으로 돌려보자는 제안이었다. 순환 포장재, 그 낯선 시스템에 대한 첫 경험..
버려지는 치약 튜브, 고체 치약으로 멈출 수 있을까? 하루 두 번, 무심코 생기는 플라스틱 흔적아침이 시작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 그리고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하는 일. 치약을 짜고 칫솔질을 하는 그 루틴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 끝에 남겨진 플라스틱 튜브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별로 없었다. 매년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치약 튜브는 약 20억 개에 달한다. 튜브형 치약은 다 쓴 뒤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복합 소재로 만들어져 분리도 어렵고, 대부분이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하루 두 번, 그저 ‘깨끗해지기 위해’ 사용하는 치약. 그 습관이 쌓여 만든 거대한 쓰레기의 산을 상상하면, 문득 칫솔질 후에 남은 건 치아의 깨끗함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그리고 그 순간, 고체 치약이라는 선택지가 눈에 들어온다. 무심코 짜던 액체 대신, 작은 알약 하나를 꺼..
샤워 후 플라스틱 없이 — 고체 보디로션바가 남긴 촉촉한 변화 샤워 후 루틴, 너무 당연했던 선택들샤워는 늘 같은 흐름이었다. 따뜻한 물줄기로 하루를 씻어내고,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털어낸 뒤, 로션을 꺼내 펌프를 누른다. 쿡 눌러 나오는 크림을 손바닥에 덜어 급히 바르고, 바쁜 하루로 다시 밀려들어간다. 욕실 선반 위엔 늘 플라스틱 용기가 줄지어 서 있다. 바디워시, 샴푸, 트리트먼트, 보디로션, 핸드크림. 그 중에서도 보디로션은 늘 크고 무겁다. 매번 다 쓰기도 전에 새 제품이 생기고, 용기 채로 버려지는 일은 당연해진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일상이 묘하게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매일 반복되지만, 정작 아무 감각도 없이 흘려보내는 루틴. 그러던 어느 날, 고체 보디로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손바닥만 한 바 하나로, 샤워 후의 시간이 다시 설계될 수 있다는 사..
수저 하나 바꿨을 뿐인데 — 포터블 식기 키트가 바꾼 외식의 풍경 일회용 수저가 남기는 건 생각보다 많았다도시에서 외식은 피할 수 없는 루틴이다. 혼밥을 하든, 동료들과 점심을 먹든, 주말에 포장을 하든, 결국 우리는 매일 누군가의 식탁 위에 앉게 된다. 그 식탁 위엔 종종 나무젓가락이 놓여 있고, 플라스틱 숟가락이 곁들여 있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도구. 짧은 식사시간과 함께 사라지지만, 그 쓰레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매일 수백만 개씩 쌓이는 일회용 수저들은 재활용조차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고, 결국 매립되거나 소각되며 땅과 공기를 더럽힌다. 사실, 그 수저가 없어서 불편했던 적은 없다. 늘 제공되었고,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문제는 바로 그 무심함이었다. 그래서 ‘수저를 바꾸는 일’은 단순한 행동 이상이었다. 외식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일, 그 ..
햇빛으로 말리는 시간, 빨래가 아닌 마음이 정돈된다 건조기 속 시간은 너무 빨랐다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에 넣고, 바삭하게 마른 빨래를 꺼낸다. 분명 편리하다. 몇 시간 뒤면 포근한 이불과 말끔한 수건이 기다리고 있고, 흐린 날에도 상관없이 뽀송함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그 편리함 안엔 묘한 허전함이 있다. 건조기 속 시간은 빠르지만, 빨래를 둘러싼 감각은 사라진다. 빨래가 마르는 소리도, 햇살을 받으며 옷감이 말라가는 모습도, 손끝으로 눌러보며 확인하던 습기도. 그리고 어느 순간, 불쑥 떠오른다. 이 빠른 건조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지, 한 번의 작동으로 얼마나 많은 전기를 써야 하는지. 무언가가 너무 빠르면, 그 안의 ‘관심’이 줄어든다. 그래서 건조기 대신 햇빛과 바람을 택하는 일은 다시 ‘돌봄’을 되찾는 실천이 된다. 빨래를 넌다는..
거품 없이도 깨끗하게 — 고체 페이셜 클렌저가 만든 저자극 루틴 지우는 루틴, 그리고 그 속의 피로하루가 끝나갈 무렵, 거울 앞에 선다. 메이크업을 지우고, 선크림을 닦아내고, 피지와 땀을 씻어내는 루틴. 페이셜 클렌징은 하루의 마침표이자 새로운 감각을 여는 문턱이다. 하지만 그 익숙한 루틴 안에는 늘 피로가 숨어 있다. 진한 거품, 알싸한 향, 그리고 펌프를 누를 때마다 손에 남는 묘한 화학감. 무엇보다 욕실 선반 위에 줄지어 놓인 플라스틱 용기들이 점점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많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 순간, 거품 없는 클렌징 루틴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샴푸와 바디워시는 이미 고체로 전환된 지 오래다. 그런데 왜 얼굴만큼은 여전히 액체에 의존하고 있을까? 그 물음에 대답하듯 등장한 것이 바로 고체 페이셜 클렌징바다. 작고 단단한 이 비..
비닐 없는 냉장고를 상상해본 적 있나요? 실리콘 지퍼백이 만든 새로운 질서 냉장고 정리의 미로에서 길을 잃다주방의 혼란은 늘 냉장고에서 시작된다. 식사 후 남은 음식, 봉지를 반쯤 열어둔 채 집어넣은 채소, 비닐에 대충 감싼 고기나 두부. 아무리 정리해도 며칠이면 다시 어질러진다. 그 속에서 눈에 띄는 건, 투명하지만 지저분한 비닐백과 1회용 랩. 매번 버리면서도 죄책감은 없지 않았다.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대체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SNS 피드에서 ‘실리콘 지퍼백’을 봤다. 컬러풀하고 단정한 모양의 그 가방들이 냉장고 안에서 정돈된 채 줄지어 놓여 있는 모습은 놀랍도록 정갈했다. 정리라는 것이 단지 물건을 줄이는 게 아니라, ‘포장하는 방식’을 바꾸는 일이라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났다. 실리콘 지퍼백은 그렇게, 주방 한켠에서 조..
피부에 닿는 감각부터 달라졌다 — 재사용 생리대가 바꾼 주기 익숙한 불편함에 길들여졌던 시간들생리는 반복된다. 대부분의 여성에게 그것은 한 달에 한 번, 몇 일간의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일상이다. 그런데 그 반복 안에서 사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생리 자체가 아니라 생리를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일회용 생리대는 늘 당연하게 사용되어왔다. 마트에 늘 진열돼 있고, 포장도 깔끔하며, 교체도 빠르고 간편하다. 하지만 너무 자주 잊고 있었던 것도 있다. 그 안쪽에 깔린 화학 성분, 장시간 사용 후의 불쾌한 냄새, 피부에 닿는 인공적인 질감. 어느 날 문득 그 ‘익숙한 불편함’이 더 이상 익숙하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붉은 자극, 가려움, 끈적이는 촉감, 그리고 무심코 버려지는 쓰레기들. 그제야 비로소 질문이 시작된다. 이건 정말, 이렇게까지 불편해야만 하는 걸까?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