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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웨이스트

샴푸 후 꼭 린스를 써야 할까? 고체 린스바가 건넨 의외의 대답

당연하게 여겨온 루틴의 무게

긴 하루를 마치고 욕실로 들어간다. 따뜻한 물줄기, 거품 나는 샴푸,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린스. 샴푸가 끝나면 자동으로 손이 린스에 간다. 이 순서를 의심해본 적은 없다. 광고에서도, 설명서에서도 늘 그렇게 말해왔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당연함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샴푸는 이미 고체 제품으로 바꿨고, 욕실 선반 위 플라스틱 용기는 하나둘 사라졌다. 하지만 린스는 여전히 펌프형 액체로 남아 있었다. 바디워시, 치약, 클렌저까지 고체로 전환된 와중에, 린스만은 왜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을까? 그 물음 끝에 등장한 것이 바로 고체 린스바(Rinse Bar)다. 낯설지만 필요한 존재. 익숙한 루틴에 처음으로 ‘질문’을 던져준 물건. 그리고 실제로 써보면, 이 작은 바 하나가 얼마나 많은 고정관념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작고 단단한 바 하나가 가진 설득력

고체 린스바는 샴푸바와 비슷한 크기와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감촉은 조금 다르다. 샴푸바보다 미끄럽고, 살짝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진다. 물에 적시고 손에 문질러도 되지만, 대부분은 모발에 직접 문질러 바르는 방식을 택한다. 처음에는 어색하다. 액체 린스처럼 ‘흘러내리는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끝으로 바에 닿는 그 순간, 부드러운 코팅감이 모발에 그대로 전해진다. 윤기 있는 막이 생기듯 모발 표면이 정돈되고, 헹구는 과정에서도 미끌거림 없이 깔끔한 마무리감이 남는다. 무엇보다 고체 린스바는 과하게 바르기가 어렵다. 액체처럼 펌프 한 번에 쏟아지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필요한 만큼’만 사용할 수 있다. 이 점이야말로 사용자에게 새로운 리듬을 가르쳐주는 지점이다. 샴푸와 린스를 '쌍으로 쓰는 법'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맞춰 쓰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린스를 꼭 써야 할까? 다시 쓰게 되는 질문들

고체 린스바를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린스 자체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샴푸 후 린스를 써야 하는 이유가 뭘까?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라면, 과연 모든 두피와 모발에 그게 필요한가? 린스는 기본적으로 큐티클을 정돈해 모발을 부드럽게 만들고, 손상 방지와 엉킴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기능은 모발의 길이, 굵기,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 특히 짧거나 건강한 모발, 또는 유분기가 있는 두피를 가진 사람은 린스를 자주 쓰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다. 고체 린스는 이런 ‘선택적 사용’을 더 쉽게 만들어준다. 어느 날은 생략하고, 어느 날은 아주 조금만, 또는 끝 쪽에만 집중해서 사용하는 방식. 이는 단순히 제품의 형태를 바꾼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덜어내는 습관’을 익히게 만든다. 그렇게 린스는 ‘무조건적인 후속 단계’가 아니라, 하나의 의식적 선택지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잘 맞는 머릿결, 그리고 알아야 할 한계

모든 모발에 고체 린스바가 완벽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건강하고 중간 길이 이상의 직모, 혹은 가늘고 건조한 머릿결에는 린스바가 굉장히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수분감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기름지지 않고 가볍게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한 곱슬머리나 탈색·염색 등으로 손상된 모발은 고체 린스의 세정력이나 보습력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낄 수도 있다. 특히 부드러운 코팅감이 오래 지속되길 원하는 사용자의 경우, 여전히 액체 린스의 풍부함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럼에도 고체 린스는 ‘부분 사용’이나 ‘여행용’, 혹은 세 번 중 한 번만 쓰는 대체 루틴으로 훌륭하다. 제품에 따라 천연 오일이나 버터 성분이 배합된 린스바는 보습력을 강화한 것도 많아, 사용 후 건조감 없이 촉촉한 마무리가 가능하다. 중요한 건, 린스를 쓸지 말지를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만, 필요한 만큼 쓰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플라스틱 없이도 가능하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

고체 린스바는 결국, ‘샴푸 후 린스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깨는 경험이다. 동시에, 플라스틱 없이도 머리를 부드럽게 관리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수명이 다한 린스바는 말없이 닳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는 건 비워진 욕실 선반과 조금 더 간결해진 루틴이다. 포장이 줄고, 내용물이 줄고, 의무감도 줄어든다. 많은 고체 린스 브랜드들은 ‘적정 사용’을 위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예쁜 디자인이나 강한 향 대신, 순하고 정직한 성분과 반복 가능한 구조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그리고 사용자는 그 조용한 언어를 점점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결국 린스는 모발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도 꼭 린스를 써야 할까?" 고체 린스바는 매번 그 질문을 던져주며, 욕실 안에서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샴푸 후 꼭 린스를 써야 할까? 고체 린스바가 건넨 의외의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