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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웨이스트

피부에 닿는 감각부터 달라졌다 — 재사용 생리대가 바꾼 주기

익숙한 불편함에 길들여졌던 시간들

생리는 반복된다. 대부분의 여성에게 그것은 한 달에 한 번, 몇 일간의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일상이다. 그런데 그 반복 안에서 사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생리 자체가 아니라 생리를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일회용 생리대는 늘 당연하게 사용되어왔다. 마트에 늘 진열돼 있고, 포장도 깔끔하며, 교체도 빠르고 간편하다. 하지만 너무 자주 잊고 있었던 것도 있다. 그 안쪽에 깔린 화학 성분, 장시간 사용 후의 불쾌한 냄새, 피부에 닿는 인공적인 질감. 어느 날 문득 그 ‘익숙한 불편함’이 더 이상 익숙하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붉은 자극, 가려움, 끈적이는 촉감, 그리고 무심코 버려지는 쓰레기들. 그제야 비로소 질문이 시작된다. 이건 정말, 이렇게까지 불편해야만 하는 걸까?

피부에 닿는 감각부터 달라졌다 — 재사용 생리대가 바꾼 주기

 

천이 닿는 자리, 감각이 조용히 바뀌기 시작한다

재사용 생리대는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번거롭다’, ‘누가 그걸 매번 빨아 쓰냐’는 말에 가려져 왔다. 하지만 한 번 사용해 보면, 가장 먼저 달라지는 건 의외로 피부의 감각이다. 겉면은 면 또는 오가닉 코튼으로 만들어져 있고, 안쪽은 흡수와 방수를 함께 잡은 다층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첫 착용 순간 느껴지는 건 따뜻한 천의 감촉. 뭔가를 ‘붙였다’는 느낌이 아니라, ‘입고 있다’는 감각에 더 가깝다.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가장 흔히 나오는 대답은, “오히려 잊고 있었다”는 말이다. 땀이나 혈이 고이지 않고 천이 자연스럽게 흡수하면서 피부 자극이 줄고, 장시간 착용 후에도 불쾌감이 덜하다. 특히 밤샘용 대형 생리대의 경우, 일회용은 불안감과 누수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지만, 재사용 생리대는 패드의 밀착감과 흡수량 덕분에 ‘푹 자고 일어난 기분’마저 달라진다. 이 조용한 변화는, 작은 천 한 장이 만들어낸 ‘쉼의 구조’이기도 하다.

 

피부에 좋다는 것, 환경에도 좋다는 것

재사용 생리대를 처음 쓰고 나면 자연스럽게 든 생각은 이것이다. “그동안 왜 이걸 몰랐을까?” 하루 평균 4~5장의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고, 5일 주기가 지나면 최소 20장. 1년에 12번, 약 240장의 쓰레기가 그냥 버려진다. 이 쓰레기는 분해까지 500년 이상이 걸린다. 생리 기간이 40년이라면, 한 사람이 버리는 생리대만 수천 장이 넘는다. 반면 재사용 생리대는 보통 2~3년, 잘 관리하면 5년 이상 사용할 수 있다. 610개 정도를 번갈아 세탁하며 쓰는 구조고, 물로 헹군 뒤 세탁기에 돌리거나 손세탁하면 된다. 누군가는 ‘세탁이 너무 번거롭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몸에 닿는 감각, 매달 생기는 쓰레기, 그리고 평소의 루틴에서 줄어드는 지출까지 감안하면, 그 세탁은 번거로움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루틴으로 자리잡는다. 천을 조용히 헹구는 그 시간은 내 몸을 돌보는 작은 리추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생리의 풍경이 바뀌면, 감정도 따라 바뀐다

재사용 생리대의 가장 큰 변화는 감각적인 것이지만, 그보다 더 깊은 건 생리를 대하는 마음의 태도다. 일회용 생리대는 대체로 ‘빨리 갈고, 감추고, 버리는’ 존재였다. 생리는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숨겨지는 일이고, 생리대를 사용하는 모습은 되도록 드러나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재사용 생리대는 오히려 ‘관리’에 가까운 개념을 요구한다. 자신의 주기를 기록하고, 컨디션에 따라 패드를 고르고, 사용 후엔 조심스레 씻어 말린다. 단지 생리혈을 닦아내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매번 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몸을 바라보는 감각 자체가 달라지는 것. 이런 루틴이 반복되면, 생리 자체에 대한 불편함도 달라진다. 피해야 할 기간이 아니라 ‘쉬어야 할 기간’처럼 느껴지고, 생리를 감추기보다 관리하는 감정이 만들어진다. 재사용 생리대는 여성의 생리 루틴을 ‘수치심’에서 ‘주체성’으로 돌려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작은 천이 만든 큰 전환

시작은 아주 작다. 한 장의 천, 한 번의 사용, 한 번의 세탁. 하지만 그 반복은 루틴이 되고, 루틴은 감각을 바꾸고, 감각은 사고를 바꾼다. 지금은 면 탐폰, 생리컵, 월경 디스크, 생리팬티 등 다양한 지속가능한 생리 용품이 나오고 있고, 그 선택지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재사용 생리대는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인 전환을 제공한다. 플라스틱도, 실리콘도 아닌, 그냥 천으로 만든 한 장의 제품. 그것이 닿는 자리에 남는 건 불편함이 아니라, 조용한 안정감이다. 그리고 이 작은 안정감이 매달 반복되는 생리 주기 속에서 ‘내 몸을 돌보는 감각’으로 확장된다. 재사용 생리대는 결국, 생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리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다시 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