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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거품이 닿는 순간, 고체 바디워시가 만든 저녁의 전환 샤워라는 의식, 그리고 그 안의 익숙함하루의 끝에서 사람은 물을 찾는다. 흐르는 물 아래에 서서 피로를 씻고, 기분을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한다. 샤워는 단순한 위생 행위를 넘어 하나의 정서적 리추얼이 된다. 그런 샤워의 중심에는 언제나 익숙한 제형이 있었다. 반짝이는 젤, 거품 많은 워시, 시원한 향의 바디 클렌저. 하지만 그 익숙함은 늘 플라스틱과 함께였다. 펌프형 용기의 바디워시는 한 번 비워내면 무언가를 남긴다. 재활용하기 어려운 용기, 필요 이상으로 많은 사용량, 그리고 수조 톤의 물과 플라스틱이 함께 소비된다. 그 틈에서 고체 바디워시가 다시 돌아왔다. 오래된 듯하지만 낯설고, 단순한 듯하지만 새롭다. 그리고 그 고요한 형태는 밤의 샤워 루틴에 천천히 스며들기 시작한다. 거품 대신 감각으로 말..
도시락을 감싸는 방식이 바뀌면, 식사의 의미도 바뀐다 — 밀랍 랩의 제안 식사를 포장하는 일상의 무심함점심 도시락을 포장할 때 손이 먼저 가는 것은 늘 그 얇고 투명한 플라스틱 랩이다. 길게 뜯어낸 랩을 휘감아 김밥을 싸고, 반찬통을 덮고, 남은 샌드위치를 감싼다. 몇 시간 후, 랩은 쓰레기통으로 사라진다. 문제는 이 랩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랩은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하고, 대부분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열에도 약해 환경호르몬 문제도 지적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익숙하다는 이유로 계속 같은 선택을 한다. ‘이게 제일 편하니까.’ 이런 흐름 속에서 밀랍 랩(beeswax wrap)이라는 대안이 등장했다. 꿀벌의 밀랍, 천연 수지, 코튼 천을 조합한 이 랩은 플라스틱 없이도 음식의 신선도를 지키고, 사용 후에는 씻어서 다시 쓸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단..
작은 관성이 만드는 파도, 리유저블 빨대가 바꾼 한 모금의 무게 무심코 건넨 빨대 하나가 남긴 것들도시의 카페 테이블에는 늘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투명한 컵, 손에 익은 브랜드 로고, 그리고 음료 위에 꽂힌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마신 지는 몇 분이지만, 남겨지는 건 수백 년을 떠돌 플라스틱 조각 하나다. 사람들은 대개 그 무게를 실감하지 못한다. 빨대는 작고 가볍고, 눈앞에서 금세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은 소비가 남기는 흔적은 결코 작지 않다. 매년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플라스틱 빨대는 80억 개 이상. 그중 상당수는 재활용되지 못한 채 바다를 떠돌고, 해양 생물의 코와 위 속에 스며든다. 그러한 현실을 마주한 순간, 사람들이 하나둘 ‘리유저블 빨대’라는 대안을 들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처럼 가볍지만, 반복 사용 가능한 구조. 그리고 그 선택은 단순한 친..
세탁의 시간을 되돌리다, 비누열매가 들려주는 천연 세제의 진심 익숙한 거품 너머의 질문빨래는 늘 같은 방식으로 흘러간다. 액체 세제를 뚜껑에 붓고, 향기를 기대하며 세탁기 버튼을 누른다. 바닥에 떨어진 빨래를 주워 넣는 무심한 손끝에도 늘 같은 거품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그 익숙함 뒤엔 언제부터인가 놓치고 있던 질문이 하나 생겨났다. 이 모든 향기와 편리함은 과연 무엇으로부터 왔을까. 그리고 무엇을 남기고 있는 걸까. 바로 그 지점에서 비누열매라는 이름이 다시 불려지기 시작했다. 인도와 네팔, 동남아시아에서는 오랫동안 전통 세제로 사용돼온 천연 열매. 사포닌이라는 천연 계면활성제를 품은 이 작은 열매는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채, 그저 자연의 힘으로 거품을 내고 빨래를 씻어낸다. 화려한 패키지도, 인공 향도 없지만, 그 안에는 원래 우리가 빨래라고 믿었던 모든 시간..
향기와 구조를 모두 바꾸다, Myro의 리필 루틴 실험 당연했던 일상에 질문을 던지다데오도란트를 바르는 일은 무척 개인적이지만, 누구에게나 익숙한 루틴이다. 아침 샤워 후 거울 앞에서, 체육관에서 운동복을 갈아입으며, 혹은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긴장을 다잡기 위해. 이 작은 캡슐은 우리의 긴 하루를 버텨내게 하는 방패 같은 존재다. 하지만 이 간단한 루틴 속엔 오랫동안 바뀌지 않은 고정관념이 숨어 있다. 한 번 쓰고 나면 버려지는 플라스틱 용기, 내용물의 유해 성분, 개성과는 거리가 먼 획일적인 디자인. 우리는 매일같이 그것을 바르면서도 단 한 번도 그 구조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데오도란트의 세계에, 어느 날 Myro가 나타났다. 그들은 물었다. “매일 반복되는 이 친밀한 루틴,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질문은 명쾌했고, 그 대답은 훨씬 더 구조적이었..
반려의 삶에도 지속가능성을, Beco가 그리는 동행의 방식 함께 사는 일상, 그 안의 사소한 무심함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은 늘 따뜻하다. 아침을 깨우는 꼬리의 흔들림, 퇴근을 반기는 발소리, 밤이 깊어질수록 가까워지는 체온. 이 일상은 사랑으로 채워져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소비가 함께 쌓인다. 일회용 배변 봉투, 플라스틱 장난감, 색색의 그릇과 간식 포장지들. 그 대부분은 비닐과 플라스틱, 그리고 분해되지 않는 쓰레기로 남는다. Beco는 이 지점에서 시작된 브랜드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이 작은 브랜드는 ‘반려의 삶도 환경과 함께 갈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들에 질문을 던졌다. ‘그 녀석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써도 괜찮은 걸까?’ 이 물음은 강요가 아니라 제안이었다. 그리고 그 제안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
섬세한 관리가 만드는 긴 지속, Steamery의 천천한 패브릭 선언 세탁 다음의 시간, 옷은 여전히 살아 있다옷은 세탁이 끝난 후에도 말없이 말을 건다. 단추 사이사이에 낀 먼지, 소매 끝에 남은 자국, 조금씩 일어난 보풀. 대개는 지나치고 마는 이 디테일들 속에 ‘더 오래 입을 수 있었던 옷’이 숨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옷을 다루는 방식은 ‘입고, 때가 되면 세탁하고, 결국엔 버리는’ 일방적인 루틴에 가깝다. 하지만 Steamery는 그 익숙함에 질문을 던진다. "옷을 더 오래 입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스웨덴 브랜드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감각적인 답이다. 그들은 패션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다려지고, 케어되고, 복원되며, 다시 옷장에서 꺼내지는 순간들. Steamery는 세탁 이후의 시간에 조용히 개입하며, 옷과 사람, 그리고 환경 사이의..
향기만을 남기는 욕실, byHumankind가 디자인한 새로운 청결 욕실이라는 은밀한 소비 공간하루 중 가장 많은 플라스틱을 만지는 곳은 어쩌면 욕실일지도 모른다. 샴푸, 바디워시, 클렌저, 데오도란트, 치약까지. 바닥과 선반 위를 채우고 있는 병과 튜브, 캡과 펌프는 모두 각기 다른 브랜드의 패키지로 뒤엉켜 있다. 이곳은 청결을 위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매일같이 버려지는 플라스틱의 무덤이기도 하다. byHumankind는 이 모순된 공간에 질문을 던졌다. "왜 청결을 위해 환경은 더럽혀져야 할까?" 그리고 그들은 욕실을 다시 디자인하기로 한다.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욕실에서 일어나는 ‘소비 행위’ 그 자체를 재구성하는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이 브랜드의 욕실 실험은 디자인과 기능, 그리고 윤리적 소비라는 개념이 정교하게 얽힌 제안이기도 하다. 비워낸 병,..